글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을 육성으로 듣습니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지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1931년 경북 경주 산내면에서 태어난 김기봉은 산내고등공민학교 졸업 직후 6·25 전쟁을 맞이하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학도병 참여를 결심하고, 1950년 교복 차림으로 입대하였다.
전쟁 초기 대구 수성국민학교 제5교육대에서 군번을 부여받은 그는 곧바로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인 다부동 가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두 달간 가산에 주둔하며 미 제7사단으로부터 보급받은 전투식량과 주먹밥으로 버티며 전투를 수행하였다. 9월 장마 시기에는 물이 고인 방공호에 갇혀 있다가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탈출에 성공하였다.
다부동 전투 이후 제주도 모슬포 제1훈련소에서 M1 소총 사격술 조교로 복무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52년에는 제9사단으로 차출되어 백마고지 전투에 척후병으로 투입되었다. 작전 중 적에게 발각되어 다시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으나 탈출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류탄 파편에 대퇴부 부상을 입어 경주 제18육군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다.
1955년 5월 5년여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그는 모교인 우라국민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고향에서 이장을 맡아 마을 교량 가설 등 지역 사회 활동에 종사하였다. 그는 8남매의 장남으로서 자녀와 조카 등 15명의 가족을 부양하며 생애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