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을 육성으로 듣습니다.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지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손대익은 1932년 경북 포항의 송라에서 태어나 포항중학교 6학년에 재학 중 전쟁을 맞이하였다. 1950년 7월, "나라가 없으면 공부도 소용없다"는 부름에 포항중학교 학생 36명과 함께 학도병으로 자원하였다. 포항역에서 대구로 이동한 그는 당시 국군 최정예 부대였던 제17연대에 배속되었다.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인 기계·안강 전투와 곤제봉 전투에서 치열한 고지전을 치른 뒤, 미군 함정을 타고 인천상륙작전(9.15)에 참전하였다. 인천 상륙 후 한강을 건너 서울로 진입한 그는 뚝섬 일대에서 패잔병을 소탕하며 인민군 포로를 생포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서울 수복 후에는 제2사단 소속으로 평강, 철원, 김화 등 중부전선으로 북진하였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1.4 후퇴를 겪기도 했으나, 수색대 조장으로서 적진에 침투해 중공군 5명을 생포하고 장비를 노획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52년 금화 오성산 인근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원대 복귀를 자청하며 부대를 지켰다. 이후 5군단 정보처 요원으로 근무하다가 1954년 제대하였다. 전쟁 후에는 42년간 교직에 몸담으며 후세 교육에 헌신하였다.